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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리하지 않고 천천히, 그리고 오래오래
최근 읽고 있는 한 작가님의 책이 있다. 문학에 문외한 나로서는 굳이 이 책의 장르를 구분하라고 한다면 잘 모른다고 대답할 것 같다. 작가님의 생각을 정리한 에세이인 듯하다가도 문득 나에게 '나도 이런 삶을 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게 만들어 자기 계발서 같은 느낌을 주기도 한다.
이 책은 동네의 어느 한 독립서점에서 구매하였다. 자기 자신을 이끌어 가는 자신의 모습을 그린 표지 삽화가 맘에 들었고, (책 표지를 보면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제목이 가장 맘에 들었다. 사실 작가님에겐 죄송하지만 이 책의 제목을 나의 블로그 제목으로 정하였다.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그런 삶을 살고 싶어 졌다. 그래서 닮고 싶어 졌고 '그렇게 살아도 괜찮구나'라는 느낌을 받고 싶어서였다.
20대의 나는 치열했고 조급했으며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발버둥 쳤다. 그리고 30대가 되어 뒤돌아보는 나의 모습은 어떨까. 나로선 꽤나 열심히 살아왔노라고 생각했지만 문득 돌아본 나는 어느 것도 가진 게 없었다. 그저 한 마리의 경주마처럼 열심히 달려보았지만 1등도 아닌, 꼴등도 아닌, 누구의 기억에도 남아있지 않은 채 중간쯤 결승선을 통과한... 그저 한 마리의 경주마처럼. 그때그때 나에게 닥친 일들을 헤쳐나가기에 바삐 살았고,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아왔다.
그러다 최근 읽게 된 책이 바로 한수희 작가님의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라는 책인 것이다.
이 작가님은 그동안 발행한 모든 책에 자신의 달리기에 대한 이야기를 쓰셨다고 한다. 마라토너도 아니고 마라톤을 준비하시는 것도 아니실뿐더러 그냥 동네 생활 달리기를 하신다고 하셨다. 그리곤 더 빨리 뛸 수 있음에도 그러지 아니하고, 한 바퀴 더 뛸 수 있음에도 늘 남겨두신다고 한다. 자신의 목표는 마라토너가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이를 먹은 후에도 오래오래 달리기가 하고 싶다고 하신다. 그저 오래오래, 혼자서, 조금씩 달리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이 이야기가 너무나도 와 닿는다. 할 줄 아는 운동도, 마땅히 하고 싶은 운동도 없을 때 나도 달리기를 시작했다. 사람 많은 공원보다는 외지고 가로등 불빛 하나만 달랑 있는 그런 거리를 나 혼자 달리는 것을 좋아한다. 일단 달리기 시작하면 머릿속에 많은 생각들이 차올라서 이런저런 생각 정리를 할 수가 있어서 좋다. 그리고 숨이 차오르고 체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어서 좋다. 그저 머리를 비우고 몸이 움직이기에 달리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달리기가 좋았다.
그렇게 달리다 보니 하루하루 달리는 거리도 늘어나고 숨도 덜 차오르고 몸도 훨씬 가벼워졌다. (기분 탓인지 실제로 가벼워진 것인지는 모르지만...) 그러다가 욕심이 났다. 나도 마라톤에 나가볼까. 물론 32.195km를 뛰는 게 아니라 흔히 각 시도군에서 개최하는 하프마라톤 말이다. 지금까지 뛰어왔던 것에 대해 무언가를 남기고 싶은 마음도 있어서 참가를 결정하고 더 열심히 뛰기 시작했다. 목표를 설정하고 완주를 위해 내가 뛴 시간과 거리를 측정해가며 연습하였다. 목표가 생기고 나니, 뭔가를 달성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나니 달리기가 재미없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들은 목표를 정하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목표를 정하니 의욕이 사라졌다. 내가 이루지 못하면? 혹은 이루고 나면?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불안이었다. 그렇게 달리기도 그만두었고 신청하였던 마라톤도 참가하지 않았다. (기념 티셔츠만 남았다...)
나도 만약 작가님처럼 했더라면, 작가님과 같은 마음가짐이었다면 '아마 달리기를 아직까지 하고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보았다. 그래서 최근 들어 다시 달리기를 시작하였다. 그동안 뛰지 않았던 나의 허벅지는 근육이 없어진 지 오래였다. 이런 근력 상태라면 오래 못 뛸 것이 뻔하였다. 하지만 이번엔 어떤 걱정도, 어떤 근심도 들지 않았다. 뛰다가 지치면 어때. 힘들어서 좀 걸으면 어때. 나는 오늘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도 많은 날들을 달릴 거잖아.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졌다. 작가님께 이야기하고 싶다. 저도 오래오래, 혼자서, 조금씩 달리는 사람이 되겠습니다.
나의 20대는 치열하고 조급했지만, 나의 30대는 달라지길 바라본다. 이룬 게 없고 가진 게 없는 나를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오늘도 무리하지 않고 별일 없이 잘 지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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